내 책상엔 늘 여러 창이 떠 있었다. 그게 좋은 건지 나쁜 건지 8년 내내 헷갈렸다.
IDE 랑 터미널 다섯 개. 한 모니터 안에 그것들이 빽빽하게 깔려 있고, 다른 모니터엔 광고 매니저와 대시보드와 노트가 또 따로 떠 있다. 한 창에 5초쯤 머물다가 다음 창. 한 창에 너무 오래 머물면 다른 창들이 답답해진다. 더 중요한 건 각 작업 자체도 직렬이 아니라 병렬로 굴린다는 점이다. 클로드 코드 하나를 띄워두고 끝낼 때까지 기다리는 게 아니라, 한 작업 안에서도 서브에이전트 여러 개를 동시에 지정해 병렬로 일을 던진다. 한 화면 안에서 두 명이, 다섯 명이, 열 명이 동시에 다른 일을 한다.
말하자면 다양한 작업을 꽤 많은 병렬로 굴리는 게 내 디폴트 작업 모드였다. 8년 동안 한 번도 바뀌지 않았다.
그러면서도 늘 어딘가에 의심이 깔려 있었다. 다른 사람들은 한 가지를 깊이 파는 것처럼 보였다. 나는 다섯 트랙을 얕게 동시에 끌고 가는 것 같았다. 이게 진짜로 일이 잘 되는 모양인가, 아니면 그냥 한 가지에 못 머무는 거 아닌가. 매년 한 번씩은 다짐했다. 한 번에 한 가지에만 집중하자고. 한 시간만 한 화면에 박혀 있자고. 다짐은 늘 오전이었고, 깨지는 건 오후 두 시쯤이었다. 다짐을 더 강하게 하면 더 빨리 깨졌다.
그러면 또 자책했다. 정신을 못 차린 거다, 나는. 8년이 그렇게 갔다. 결과가 안 나오는 건 아니었다. 광고도 돌아갔고, 코드도 짜졌고, 데이터도 봤다. 다만 한 가지에 깊이 빠지는 동료 앞에서 내가 유독 집중력이 약한가 싶은 자책이 따라왔다.
그러던 어느 밤이었다.
어느 밤 페이스북에서 본 한 글
박태영 대표의 글이었다.
평소에 눈여겨보는 분 중 한 명이다. AI를 포함해서 산업 전반을 보는 시야가 날카로워서, 페이스북 피드에서 박태영 대표의 글이 뜨면 멈춰서 읽는다. 어떤 흐름이 오고 있는지를 미리 잡아내는 감각이 있다고 느낀다. 그래서 팔로우해두고 있다.
그날 올라온 글의 첫 문장이 이거였다.
"ADHD를 가진 사람 머릿속에는 다양한 컨텍스트가 동시에 흐른다." (박태영, 2026-04-21)
스크롤이 멈췄다.
다음 문장이 이어졌다. 단점이 될 수 있다고. 일반적인 업무 상황에서는 zone out 하거나 동시성 메모리 충돌이 생긴다고. 거기까지 읽고 "그래, 이거 내 얘기네" 싶었다. 그런데 그 다음 줄이 묘했다.
"하지만 머릿속에 다양한 컨텍스트가 동시에 존재할 수 있기 때문에 전투기 조종이나 경영과 같은 고강도 병렬작업에서 두각을 나타내는 경우가 많다. 현재 AI 작업은 설계에 따라 고강도 비동기 병렬 작업으로 진행할 수 있고 그렇게 했을 때 기존 업무 생산성을 최소 수십 배 높여 준다. 그렇기 때문에 ADHD는 AI와 상성이 아주 잘 맞는다." (박태영)
전투기 조종. 경영. AI 작업.
전부 한 가지가 아니라 여러 가지를 동시에 다뤄야 하는 일들이었다. 그 일들에서 ADHD가 강점이 된다고? 8년 동안 내가 "고쳐야 한다"고 다짐해온 그게?
여기서 멈춰서 한참 폰을 봤다. 그리고 한 번도 의심해본 적 없는 가정이 흔들리는 게 느껴졌다. 내가 산만한 게 아니라, 산만하다고 평가받는 환경에 있었던 거 아닌가. 8년 동안의 자기 진단이 통째로 뒤집힐 수도 있는 가능성이 처음으로 보였다.
근데 동시에 의심도 들었다. 이게 ADHD를 강점으로 미화하려는 자기변호 아닌가. 산만한 사람들이 위안 삼으려고 만든 이야기 아닌가. 박태영 대표 글이 좋아서 끌리는 건지, 내가 듣고 싶은 말이라서 끌리는 건지 분간이 안 됐다.
그래서 박태영 대표가 출발점으로 삼은 발언을 먼저 찾아봤다. 알렉스 카프라는 이름이었다.
알렉스 카프와 팔란티어
알렉스 카프는 팔란티어(Palantir)의 CEO다.
팔란티어는 미국 국방부와 CIA, 그리고 미국 정보기관 전반을 대상으로 데이터 분석 시스템을 파는 회사다. 빈 라덴 추적 작전, 우크라이나 전선의 표적 식별, 미국 보건복지부의 코로나 데이터 통합. 의사결정 속도가 곧 결과가 되는 환경에서 일한다. 일반적인 실리콘밸리 SaaS 회사와는 결이 다르다.
카프는 그 회사의 CEO로서 "ADHD/ASD 같은 신경다양성을 가진 사람들이 AI 시대에 경쟁력을 가질 것"이라고 발언했다. 박태영 대표 글에서 재인용된 것이라 카프의 원문 맥락을 100% 단정하긴 어렵지만, 적어도 박태영 대표가 받은 인상은 명확했다. 속도가 생존인 조직에서 일하는 사람이 한 진단이라는 점.
이게 인상적이었던 이유는, 일반 사무직 대상의 친절한 다양성 담론이 아니라는 점이었다. "포용하자"가 아니라 "이런 뇌가 결과를 낸다"는 진단. 카프 입장에선 신경다양성을 인정하는 게 도덕이 아니라 채용 전략이라는 얘기다.
박태영 대표도 이 부분에 끌렸다고 적었다. AI 작업이 "고강도 비동기 병렬"이라는 본인의 관찰과 카프의 발언이 같은 곳을 가리킨다는 점. 두 사람이 다른 경로로 같은 결론에 도착한 게 묘했다. 한국에서 본인이 직접 AI와 작업해본 사람과, 미국에서 그런 사람들을 대규모로 채용해 굴리는 회사의 CEO. 출발이 다른데 도착이 같았다.
여기까지 와서 호기심이 본격적으로 일었다. 이게 정말 시대 전환이라면, 이걸 미리 본 사람이 분명 더 있을 것이다. AI가 나오기 전부터, 산업화 시대가 ADHD를 비정상으로 라벨링한 게 부당하다고 본 사람들. 검색해보니 한 사람의 이름이 반복해서 떴다.
사냥꾼과 농부
Thom Hartmann.
미국의 정신치료사이자 작가. 1993년에 Attention Deficit Disorder: A Different Perception이라는 책을 냈고, 그 책에서 처음으로 "사냥꾼-농부 가설(Hunter vs Farmer Hypothesis)"을 제시했다. 본인 아들이 ADHD 진단을 받은 게 출발점이었다고 한다. 임상 의사들이 자기 아이를 "결함 있는 뇌"로 다루는 방식이 마음에 들지 않아서, 다른 프레임을 찾기 시작한 거다.
가설 자체는 이렇다. 인류는 진화사의 절대 다수를 사냥-채집으로 보냈다. 수십만 년 단위다. 농경 사회로 정착한 건 약 1만 년 전, 산업화 사무직 같은 형태는 아예 200년도 안 됐다. 그러면 우리 뇌는 어느 환경에 적응돼 있는가. 당연히 사냥꾼 환경이다.
사냥꾼에게 필요한 능력은 무엇인가. 한 가지에 한 시간 집중하는 게 아니다. 주변 환경의 모든 자극을 동시에 감지하는 능력, 빠른 맥락 전환, 위험 신호에 대한 즉각 반응, 새로운 자극에 대한 호기심이다. 사슴 발자국을 따라가다 갑자기 옆에서 부스럭 소리가 나면 즉시 그쪽으로 주의를 돌려야 한다. 그게 늦으면 죽는다.
농부에게 필요한 능력은 그 반대다. 같은 밭을 매일 같은 시간 동안 같은 방식으로 매는 능력. 멀리서 새소리가 나든 말든 신경 끄고 내 일에 집중하는 능력. 한 계절을 같은 작물에 쏟는 인내. 변화는 적이다. 안정성이 미덕이다.
Hartmann의 가설은 단순했다. ADHD라고 진단받는 뇌의 특성은 사냥꾼 환경에서는 정상 기능이었던 것의 잔존이다. 농경 시대로 진입하면서 인류 대부분이 농부 뇌로 적응했지만, 일부는 여전히 사냥꾼 뇌를 갖고 있다. 그 사람들이 농부의 환경에 들어가면 부적응이 일어난다. 그게 ADHD라는 라벨이 붙은 거다. 뇌가 이상한 게 아니라, 그 뇌가 자기 서식지가 아닌 곳에 들어가 있는 거다.
이 가설은 학계에선 본격적으로 검증된 적이 없다. Hartmann 본인이 가장 솔직하게 인정한다.
"It's not hard science, and was never intended to be." (Thom Hartmann)
엄밀한 과학이 아니다. 그렇게 의도한 적도 없다. 가설은 사고 모델일 뿐이고, 자기 아들의 ADHD를 다르게 보기 위해 만든 거라고 본인이 적었다. 이 솔직함이 오히려 신뢰를 줬다. 가설을 과학으로 포장하지 않은 채로 30년이 지났는데도 이 모델이 사라지지 않은 이유가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여기까지 따라가고 나서 8년 동안 풀리지 않던 어색함의 정체가 처음으로 한 단어로 잡혔다.
나는 농부의 사무실에 들어간 사냥꾼이었다.
회의실은 농부의 공간이었다
이 프레임으로 다시 보니 그동안 내가 회사에서 답답했던 모든 장면이 다르게 읽혔다.
한 시간짜리 회의실. 한 안건, 한 자리, 한 시간 집중. 그건 농부의 공간이다. 사냥꾼에게 한 시간은 영원이다. 30분이 지나면 머리가 다른 데로 흐르는 게 결함이 아니라, 사냥꾼 뇌가 한 자극에 묶여 있는 게 위험하다고 신호를 보내는 거다. 수십만 년 동안 그렇게 움직여서 살아남은 뇌다.
분기 단위 KPI 관리. 한 작물을 한 분기 동안 같은 방식으로 키우는 농부의 시간 단위다. 사냥꾼은 분기 단위가 아니라 하루 단위로 산다. 오늘 사슴 발자국이 보이면 사슴을 쫓고, 내일 멧돼지 흔적이 보이면 멧돼지를 쫓는다. 분기 시작 때 정한 작물을 분기 끝까지 유지하는 게 미덕이 아니다.
표준 프로세스 준수도 마찬가지다. 작년에 잘 됐던 방식을 올해도 유지하는 것. 가장 농부적인 미덕이다. 사냥꾼에겐 작년에 잘 됐던 사냥터가 올해 그대로일 거란 보장이 없다. 환경이 매일 바뀐다. 그래서 매일 다시 판단해야 한다.
8년 동안 내가 스스로에게 했던 "한 가지에 더 집중하자"는 다짐은, 내 뇌더러 농부 뇌처럼 작동하라는 요구였다. 사냥꾼한테 농사 지으라고 한 거다. 못 한다. 더 정확히는, 한다 해도 그건 사냥꾼이 가장 못하는 일이다.
그렇게 정리하니 8년 동안의 자책 일부가 분리됐다. 내가 잘못한 게 아니라, 사냥꾼 뇌가 농부의 사무실 안에서 자기를 농부 기준으로 평가하고 있었던 거다. 외부에서 평가받은 게 아니라 내가 나에게 그 잣대를 들이댔다. 그게 더 끈질겼다. 다만 이게 자기변호로 빠지지 않으려면 한 줄을 더 붙여야 한다. 그 8년 동안 결과를 내긴 했다. 사냥꾼인데도 농부의 잣대에서 평균 이상을 했다. 라벨이 잘못된 거지, 내가 일을 못 한 게 아니다.
AI가 만든 사냥터
여기까지 와서야 다섯 IDE와 다섯 터미널의 풍경이 다르게 읽혔다.
AI 작업은 본질적으로 사냥터의 형태를 갖고 있다. 클로드한테 일을 시키면 그 일은 나와 분리돼서 비동기로 굴러간다. 한 클로드가 5분 동안 뭔가 하는 동안 나는 다른 데로 시선을 돌릴 수 있다. 자연스럽게 두 번째, 세 번째, 다섯 번째 클로드를 띄운다. 다섯 개가 동시에 비동기로 굴러간다. 한 작업 안에서도 서브에이전트를 여럿 지정해서 병렬로 던지면, 한 화면 안에서 다시 다섯 명이 동시에 일한다. 어느 화면에서 새 자극이 뜨면 그쪽으로 주의를 돌리고, 처리하고, 다음 자극을 기다린다.
이게 사냥의 형태다.
박태영 대표가 "고강도 비동기 병렬 작업"이라고 부른 것의 정체가 이거였다. 농부 뇌에는 산만함이지만 사냥꾼 뇌에는 자연스러운 형태. 200년 만에 처음으로 나타난, 사냥꾼이 강점으로 작동하는 작업 환경.
8년간 회의실에서 졸던 뇌가, AI 시대에 와서 자기 서식지를 만났다. 적어도 가능성으로는.
그런데 사냥꾼이 한 자리에 묶여 있었다
신나서 다섯 대를 굴리기 시작했다. 다섯 터미널 모두 바이패스 모드로 띄웠다. 승인 프롬프트가 거의 안 뜨게, 가능한 모든 작업이 자동으로 굴러가게. 그런데도 첫 주에 다시 부딪혔다.
이번엔 회의실 때문이 아니었다. 내가 알림을 놓치는 것 때문이었다.
승인이 자동이어도 모든 게 자동은 아니다. 한 턴이 깔끔하게 끝났을 때, 자동 승인 범위를 벗어난 결정이 떴을 때, 또는 에러가 났을 때, 결국 신호는 사람한테 와야 한다. 그런데 다섯 터미널 중 3번에 새 신호가 떠도 내 시선은 1번에 가 있다. 30분이 지나도 모른다. 다섯 개 중 늘 두세 개는 어떤 형태로든 멈춰서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AI가 빠른 게 무슨 소용인가. 결국 한 사이클을 도는 속도는 내가 그 화면을 다시 들여다보는 주기에 묶여 있었다.
처음엔 "또 내가 정신을 못 차려서"라고 생각했다. 그러다 박태영-카프-Hartmann을 통과해온 머리로 다시 보니 다른 진단이 나왔다.
사냥터는 만들어졌다. 다섯 개의 사슴 발자국이 동시에 흩어져 있다. 그런데 사냥꾼이 한 자리에서 못 움직이고 있는 거다. 다섯 발자국을 따라가려면 사냥꾼이 자유롭게 이동할 수 있어야 한다. 책상 앞에 앉아서 다섯 화면을 두 눈으로 순회하는 건 사냥이 아니라 농사다. 한 자리에서 다섯 밭을 동시에 매려는 거다.
문제는 내 뇌가 아니었다. 다섯 사냥감을 만들어준 것까지는 좋은데, 사냥꾼의 위치가 여전히 한 책상 앞에 묶여 있던 거였다. 이번엔 자책할 일이 아니었다. 환경의 문제였고, 환경의 문제는 환경을 바꿔서 푸는 거다.
도구는 충분히 싸졌다
산업화 시대엔 사무실 디자인을 회사가 했다. 책상 배치, 회의실 길이, 출퇴근 시간. 개인이 손댈 수 없었다. 사냥꾼에게도 농부의 책상이 강제로 주어졌다.
지금은 다르다. Claude Code의 hooks는 settings.json 한 줄이면 박힌다. 디스코드 봇 토큰은 무료로 5분 만에 발급된다. Node.js 스크립트는 GPT한테 시키면 30분에 짜진다. 자기 신경형에 맞는 인프라를 본인이 직접 짤 수 있는 도구가 충분히 싸졌다.
여기까지 정리하니 자연스럽게 결심이 섰다. 내 작업환경을 바꿔야겠다.
문제는 한 번에 다 바꿀 수 없다는 거였다. 다섯 IDE, 다섯 터미널, 그 안의 서브에이전트 수십 개. 사냥꾼 뇌에 맞는 풀 스택 환경을 처음부터 다 짜려고 들면 또 한 번에 한 가지에만 집중하지 못해서 아무것도 못 끝낼 게 뻔했다. 그래서 가장 아픈 한 군데부터 가기로 했다.
지금의 가장 큰 병목은 분명했다. 내가 알림을 놓치는 거였다. 다섯 화면 중 어느 화면에 새 신호가 떠도, 내 시선이 그 화면에 가 있지 않으면 30분 동안 모른다. 그 30분이 다섯 클로드의 진행 속도를 절반으로 깎고 있었다. 사냥감은 사방에 흩어져 있는데 사냥꾼한테 신호가 안 닿는 상태.
이거 하나만 먼저 풀어보기로 했다. 환경 재설계의 첫 조각.
1단계 — 사냥꾼이 폰으로 신호를 받는다
가장 먼저 만든 건 단방향 알림이다. Claude Code엔 훅(hooks) 기능이 있어서 한 턴이 끝나거나 승인이 필요하거나 서브에이전트가 완료되는 순간을 잡을 수 있다. 그 순간마다 디스코드로 한 줄 푸시를 쏘게 했다. 봇은 디스코드 AI 팀 만들 때 쓰던 춘식이를 그대로 재사용해서 별도 서버도 안 띄웠다.
이거 하나로 책상에 없어도 다섯 사냥감의 신호가 폰으로 흘러왔다. 30분짜리 멈춤이 거의 사라졌다.
(중간에 디스코드 푸시 동작에서 함정 몇 개를 만났는데, 그건 본문 흐름을 끊지 않으려고 별도 기술 회고로 따로 풀 예정이다.)
2단계 — 사냥꾼이 폰으로 지시도 던진다
며칠 써보니 한계가 보였다. 받기는 잘 받는데, 외출 중에 폰으로 알림 보다가 "저거 한 줄만 고치면 되는데" 싶어도 손이 안 닿는다. 결국 집에 와서 노트북 열고 그제서야 처리한다. 단방향이면 사람이 책상에 다시 묶인다.
그래서 폰 → 디스코드 DM → 프로젝트 인박스 파일 → 다음 클로드 세션의 컨텍스트로 흘러들어 가는 양방향 라인을 더 깔았다. 폰에서 #blog 오탈자 3번 문단 고쳐줘 한 줄 던져두면, 다음번 그 프로젝트에서 클로드를 띄울 때 인박스 메시지를 알아서 인지하고 처리한다.
복잡한 큐 시스템이 아니다. 디스코드 봇 하나, Node 리스너 하나, 훅 하나. 작은 부품 세 개로 폰의 위치와 데스크톱의 진행이 떨어진다.
만들고 며칠 굴려보니 체감이 분명했다. 다섯 클로드의 가동률이 눈에 띄게 올라갔다. 화장실에 가 있는 동안에도, 점심을 먹는 동안에도, 누워서 폰만 보는 동안에도 다섯 마리가 동시에 일하고 있었다. 그리고 끝낸 놈은 즉시 폰으로 신호를 보냈다. 생각보다 훨씬 단순한 구조인데, 만들고 나니까 좋다. 그게 솔직한 감상이다.
그래서 사냥꾼이 됐는가
여기서 글을 끝내면 깔끔할 텐데, 끝내고 싶지가 않다.
박태영 대표 글에 한 줄이 더 있었다. 이걸 빼면 사이클이 반쪽이 된다.
"ADHD + AI 조합만으로는 완성되지 않는 빈 조각이 있다. ADHD가 지휘하고 AI가 업무를 한다면 마지막으로 꼼꼼히 집착적으로 확인하고 딴지를 걸고 완결 짓는 사람이 필요하다." (박태영)
박태영 대표는 그 자리를 ASD가 채운다고 했다. 디테일에 집착하고, 프로세스를 지키고, 검증하는 뇌. 사냥꾼이 사슴을 잡아왔으면 그게 정말 먹어도 되는 사슴인지 살을 발라보며 확인하는 사람이 필요하다는 얘기다. 그게 없으면 그럴듯해 보이는 가짜 사슴을 잡아온다.
지금 내 시스템은 그 자리가 비어 있다. 다섯 클로드가 그럴듯하게 결과를 던지면 그냥 머지하고, 실패해도 모르고 지나가는 일이 생긴다. 환경은 사냥터로 바꿨지만 사냥감을 검증하는 단계는 여전히 빠져 있다.
그래서 다음으로 만들 건 자동 검증 루프다. 코드 변경이면 테스트와 타입체크와 린트가 무조건 돌고, 콘텐츠 변경이면 사실관계 검증이 따로 돈다. 박태영 대표가 말한 "꼼꼼히 확인하고 딴지를 걸고 완결 짓는" 자리를, 일단은 사람 대신 자동화로 메워보는 거다. 본래 그 자리는 다른 신경형의 사람이 들어와야 가장 잘 작동한다고 생각하지만, 혼자 굴리는 시스템에선 그 역할을 흉내 낸 검증 파이프라인이라도 먼저 깔아두는 게 안 깔린 것보다 낫다.
그런데 솔직히, 이걸 적으면서도 의심이 든다.
도구는 깔았다. 단방향 알림도 양방향 브리지도 만들었다. 다음으로 검증 루프도 만들 거다. 그런데 정말로 다르게 일하고 있는가. 책상 앞에서 다섯 화면 순회하던 사람이, 폰에서 다섯 알림 순회하는 사람으로 바뀐 것뿐 아닐까. 위치만 바뀌었지 사냥꾼이 된 건가. 아직 모른다.
농부의 사무실을 떠난 건 맞다. 그렇다고 사냥꾼이 됐는가는 다른 질문이다. 환경을 바꿨다고 자동으로 다른 사람이 되는 게 아니다. 길을 아는 것과 걷는 것은 다르다고 누군가 말했었다.
8년 동안 농부의 잣대로 나를 평가하며 살았다. 박태영을, 카프를, Hartmann을 통과해서 사냥꾼이라는 새 라벨을 스스로에게 처음 붙였다. 이젠 그 라벨에 맞는 환경을 짜기 시작했다. 다음 단계는 그 환경에서 진짜로 사냥꾼처럼 살아내는 일이다. 그건 기술 글이 아니라 시간이 답해줄 것 같다.
그러면서 더 큰 질문이 따라온다. 라벨을 바꾼 것이 나를 바꾼 것인가. 환경을 짤 수 있게 된 시대가, 정말로 사람을 바꿔주는가. 농부의 잣대를 거두고 사냥꾼이라고 부르기 시작했지만, 사냥꾼은 자기가 잡아 온 사슴으로 증명되는 존재다. 라벨도 환경도 사슴이 아니다. 사슴은 살아낸 시간 안에서만 쌓인다.
이 질문을 여기에 남겨둔다.
환경은 우리가 바꿀 수 있게 됐다. 그렇다면 사람은, 환경이 바뀌면 따라서 바뀌는가.
참고
- 박태영 대표 페이스북 공개 포스트 (2026-04-21). 원문 링크.
- 알렉스 카프(팔란티어 CEO)의 신경다양성 발언은 본 포스트에서 박태영 대표를 통해 재인용된 것이며, 카프 원문의 정확한 출처와 맥락은 추가 확인이 필요한 상태다.
- **Thom Hartmann의 "사냥꾼-농부 가설"**은 그의 1993년 저서 Attention Deficit Disorder: A Different Perception과 후속작 ADHD: A Hunter in a Farmer's World에서 가져왔다. 본인이 직접 "엄밀한 과학이 아니다(It's not hard science)"라고 인정한 사고 모델임을 함께 적어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