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강의를 하게 됐다
요즘 일을 좀 많이 벌여놨다. 회사를 다니면서 이직을 준비하고 외부 강의를 시작했다. 양주시 창업경진대회에는 1차로 선발돼서 이번주 목요일에 발표심사가 잡혀 있다. 하나만 잡고 있어도 머리가 꽉 찰 일인데 어쩌다 보니 셋이 같이 굴러간다. 퇴근 후 시간과 주말을 쪼개고 또 쪼개도 모자라서 달력에 빈칸이 잘 없다.

발표심사에 들고 가는 아이템은 이거다. 흩어진 제조 현장 데이터를 AI로 잇는 ONE STOCK.
그 와중에 강의 제안이 들어왔다. 서울시장애인복지관 종사자분들을 대상으로 한 AI 활용법 강의였다. 달력을 한참 들여다보며 받는 게 맞나 잠깐 고민했는데 결론은 금방 났다. 한다. 이상하게 이런 제안은 꼭 제일 바쁠 때 온다. 지나고 보면 바쁠 때 받은 제안이 대체로 남는 게 많았다.
강의가 처음은 아니다. 전에 평택시 아이사랑센터에서 다섯 살 미만 아이를 키우는 어머님들께 강의한 적이 있다. 그때는 기초 중의 기초였다. AI가 뭔지, 어디서 여는지, 뭘 물어보면 되는지로 두 시간을 채웠다. AI를 처음 보는 분들 눈높이에 맞춰 속도를 늦추고 단어를 하나씩 풀어 설명하는 게 그 강의의 거의 전부였다.
이번엔 사정이 완전히 달랐다. 복지관 직원분들은 이미 디지털복지 파이오니어스라는 자발적 학습조직을 꾸려 AI 스터디를 돌리고 계셨다. 업무 시간을 쪼개 따로 모여서 같이 공부하는 모임이다. 이해도가 높았고 기본은 이미 다 아는 분들이었다. 기초 설명에 시간을 안 써도 되니 그 점은 편했다. 근데 이미 써본 분들 앞에서 뻔한 얘기를 꺼내면 바로 티가 난다. 늘 하던 대로는 안 되겠다 싶어서 강의 준비를 처음부터 다시 했다.

강의안을 처음부터 다시 짰다
출발점은 섭외 때 담당 팀장님이 하신 말이었다. 강의 날까지 그 말이 머리에서 안 떠났다.
"직원들이 AI를 못 쓰는 게 아니에요. 다들 잘 쓰는데, 각자 신기한 걸 만들어서 각자 노는 데서 멈춰 있어요. 그래서 정작 조직 업무에는 잘 안 닿고요."
잘 쓰는 사람은 많은데 다들 따로따로 논다는 게 고민이었다.
듣자마자 강의 주제가 정해졌다. 내가 그대로 지나온 단계였다. 나도 처음엔 혼자 신기한 걸 만들었다. 만들어서 보여주면 박수를 받았고, 박수가 끝나면 다음 주엔 잊혔다. 근데 그중 하나가 조직에 꽂히고부터 얘기가 달라졌다. 만든 사람은 나 하나인데 쓰는 사람이 60명이 됐고, 내가 신경을 꺼도 그 도구는 매일 돌아갔다. 개인의 차력쇼와 조직의 도구 사이에는 선이 하나 있다. 그 선을 넘는 방법이 이 강의에서 내가 줄 수 있는 전부라고 생각했다.
구성도 거기 맞춰 다시 짰다. 이분들은 채팅으로 AI 쓰는 법을 이미 알았고, 노코드 도구로 간단한 앱을 만들어 본 분도 있었다. 그걸 또 다루면 두 시간이 통째로 겹친다. 내가 들고 갈 건 그다음이어야 했다. 각자 만들고 끝내지 않고 조직이 같이 쓰는 도구까지 가는 것.
그래서 두 시간을 둘로 나눴다. 앞 한 시간은 보여주기다. 회사에서 만든 것들을 실물 화면으로 하나씩 보여주며 비개발자도 여기까지 갈 수 있다는 걸 먼저 깐다. 그다음 그게 다 채팅창이 아니라 터미널에서 나왔다는 얘기로 넘어간다. 뒤 한 시간은 직접 하기다. 각자 노트북에 CLI를 깔고 AI한테 한 줄이라도 직접 일을 시켜본다. 한 번이라도 직접 해봐야 집에 가서도 내 일로 남는다고 믿어서였다.
데모도 회사 얘기만 들고 가지는 않았다. 화장품 회사 재고와 경쟁사 얘기는 아무리 생생해도 복지관 업무와 거리가 있다. 복지관 일에 닿는 게 하나는 있어야 했다. 그래서 강동구 무장애 시설 35곳을 모은 지도를 터미널에서 AI한테 시켜 만들어 갔다. 코드는 AI가 짰고 뭘 만들지, 어떤 데이터를 쓸지는 내가 정했다. 강의에서 하려던 얘기가 그 한 장면에 다 들어 있었다.

"AI 그만 쫓아다니세요"로 시작했다

강의 첫 마디는 좀 엉뚱한 데서 꺼냈다.
며칠 전 SNS에서 이런 글을 봤다.
"오픈클로 정리하고 헤르메스로 갈아탔어요. 게임체인저예요."
좋아요가 천 개 넘게 달려 있었다. 근데 나는 오픈클로를 아직 한 번도 안 써봤다. 매일 AI로 일하고 회사에서 도구까지 만들어 쓰는데, 내가 안 써본 도구의 다음 세대가 벌써 게임체인저라는 거다. 매일 새 이름이 뜨고 그때마다 누군가 옆에서 이거 모르면 큰일 난다고 한다. 요즘 속도가 이렇다.
그래서 첫 질문은 이거였다. "AI 세 글자만 봐도 좀 피곤하지 않으세요?" 웃는 분도 계셨고 안 웃는 분도 계셨다. 어느 쪽이든 뜻은 안다. 안 그래도 복지관 일이 산더미다. 상담, 행사, 서류가 쌓여 있는데 자꾸 AI를 새로 배우라고 하면 그 시간이 어디서 나오나. 이게 거의 본업인 나도 너무 빨리 바뀌어서 가끔은 다 손 놓고 싶다. 그래서 먼저 말씀드렸다. 이 피로는 부끄러운 게 아니고 안 따라가는 것도 게으른 게 아니다. 잘못은 너무 빨리 바뀌는 쪽에 있다고.

근데 웃긴 게, 멀미 난다고 안 보고 있으면 이번엔 불안해진다. 도구 광고 카피는 약속이라도 한 것처럼 다 똑같다. "10배 생산성, 아니면 도태." "이번 주 안에 안 옮기면 늦습니다." 다이어트 광고랑 문법이 같다. 지금 안 하면 늦는다고 계속 재촉한다. 솔직히 나도 그 글을 본 날 저녁에 헤르메스 GitHub까지 들어가서 설치 안내문을 10분이나 들여다봤다. 오픈클로도 한 번 안 깔아본 사람이 그다음 세대 설명서를 읽고 있었던 거다. 다들 멀미와 불안 사이를 매일 왔다 갔다 한다.
그래서 이 얘기부터 했다. 이 불안은 대부분 안 해본 사람의 불안이라고. 멀리서 보면 엄청나 보인다. 굉장한 기술 같고 나만 빼고 다 아는 것 같다. 근데 막상 손으로 만져보면 별거 아닌 게 정말 많다. 나도 얼마 전에 남들이 다 좋다는 tmux를 윈도우 버전으로 비슷하게 만들어 봤다. 다 해놓고 보니 원래 쓰던 방식이 더 나았다. 시간은 날렸는데 마음은 오히려 편해졌다. 아, 저거 안 해도 되는 거였구나. 안 해보면 계속 무섭고, 한번 해보면 별거 아니게 된다.
1년 넘게 직접 만들어보며 깨달은 것도 그대로 옮겼다. 지난 1년 동안 내가 쓰는 도구는 거의 다 바뀌었다. 근데 풀려는 문제는 거의 그대로다. 재고가 어디에 얼마나 있는지, 경쟁사가 오늘 뭘 했는지, 보고서 하나에 왜 세 시간이 걸리는지. 도구를 쫓는 일은 끝이 없는데 문제는 하나 풀면 정말 하나가 없어진다. 새 도구를 좇는 동안엔 멀미가 안 가셨다. 근데 문제 하나를 붙잡고 늘어지니까 이상하게 멀미가 좀 가라앉았다. 도구가 답이라고 믿었으면 1년 동안 여섯 번은 갈아탔을 거다. 실제로 옮긴 건 두 번이고 이유는 둘 다 같았다. 그때 못 풀던 문제가 그 도구로 풀렸다. 나머지는 전부 광고 카피였다.
그래서 오늘 목표는 AI 따라잡기가 아니라고 했다. 이제 그만 쫓아다녀도 된다는 걸 보여드리는 게 목표라고.
도구는 매주 바뀌는데 내 문제는 그대로다.
도구를 몇 개 아는지는 중요하지 않다. 내 일에서 매일 막히는 문제 하나를 골라 풀면 된다. 이 얘기를 하려고 내가 만든 것들을 들고 갔다.
내가 만든 것들을 보여드렸다
말로만 하면 와닿지 않으니 회사에서 만든 걸 실물 화면으로 몇 개 보여드렸다.
하나는 경쟁사 추적이었다. 나는 화장품을 팔고, 올리브영 검색에서 우리 제품이 몇 위에 뜨는지가 매일 중요하다. 근데 솔직히 진짜 궁금한 건 우리 순위보다 경쟁사가 오늘 뭘 했나였다. 어제까지 3위였던 데가 오늘 갑자기 리뷰가 73개 늘었다면 이유가 있다. 체험단을 돌린 거다. 이런 움직임이 보여야 우리도 대응 타이밍을 잡는다. 문제는 이걸 사람이 매일 확인하려면 올리브영 검색 결과 여섯 페이지를 넘기며 제품 129개를 하나씩 비교해야 한다는 거다. 실제로 팀원 한 명이 매일 아침 30분씩 그 일에 묶여 있었다.
그래서 질문을 "어떻게 하면 더 빨리 확인하지"에서 "어떻게 하면 안 보고도 알게 되지"로 바꿨다. 말은 비슷해 보여도 이게 거의 전부다. 빨리 확인하면 여전히 사람이 그 일을 한다. 안 보고도 알게 되면 사람이 그 일에서 아예 빠진다. 지금은 매일 아침 9시에 어제와 달라진 것만 추린 리포트가 알아서 온다. 팀원의 아침 30분은 다른 일로 돌아갔다.

또 하나는 재고 질문을 대신 받아주는 거였다. "그 제품 재고 몇 개 남았어요?" 우리 회사에서 하루에도 수십 번 나오는 질문이다. 그때마다 누군가 하던 일을 멈추고 시스템을 뒤져 답을 찾아 알려줬다. 근데 아무도 이걸 문제라고 부르지 않았다. 원래 그런 거니까. 나는 이 "원래 그런 거"라는 말이 제일 무섭다. 조직이 멀쩡히 피를 흘리는데 다들 너무 익숙해서 그게 출혈인 줄 모른다.
그래서 답을 사람들이 이미 쓰는 메신저 안에 넣었다. 새 앱을 만들어 "이거 깔아서 쓰세요" 했으면 장담컨대 아무도 안 썼을 거다. 매일 들어와 있는 메신저에서 채팅 치듯 물으면 봇이 바로 답한다. 지금은 60명이 매일 쓴다. 만드는 데 2주가 걸렸고, 중간에 백엔드를 통째로 날리고 다시 짠 날도 있었다. (그날은 좀 울고 싶었다.)

하고 싶었던 말은 하나였다
사례마다 결국 같은 말을 하려고 했다.
각자 차력쇼 하지 말고 조직에 꽂자.
AI로 신기한 걸 만들면 박수는 받는다. 근데 다음 주에 아무도 안 쓰면 거기서 끝이다. 차력쇼가 나쁘다는 얘기는 아니다. 누구나 거기서 시작하고 나도 그랬다. 문제는 거기서 멈추는 거다. 개인 실험은 만든 사람이 퇴근하면 같이 퇴근한다. 만든 사람이 흥미를 잃으면 도구도 같이 죽는다. 조직에 꽂힌 도구는 내가 자리를 비워도 돌아가고 팀이 쓴다. 시간이 지나면 그 조직이 일하는 방식이 된다.

거기까지 가는 순서는 세 단계로 정리해 드렸다.
개인 → 조직, 3단계병목을 고른다
매일 반복되는 병목을 고른다. 쓰는 사람은 화려한 데모보다 다들 지겨워하는 일에서 생긴다.
작게, 혼자 만든다
한 가지 일만 하게 작게 만든다. 처음부터 큰 그림을 그리면 완성을 못 하고, 완성 못 한 도구는 아무것도 바꾸지 못한다.
이미 쓰는 도구에 넣는다
새 앱을 깔게 하지 않는다. 사람들은 새로 배우는 걸 싫어한다. 늘 보던 곳에 답이 와 있어야 쓴다.
우리 회사 재고봇도 이 순서 그대로 만들었다. 시작은 거창한 전사 프로젝트가 아니고 하루 수십 번 나오는 질문 하나였다. 그래서 살아남았다.
복지관이라 하나를 더 보탰다. 장애인 이용자 정보 같은 민감한 데이터를 다루는 곳이다. 빨리 만드는 것과 함께 그 데이터가 어디에 저장되고 어디로 나가는지도 챙겨야 한다. 신나서 만들다 보면 이걸 제일 먼저 잊는다. 근데 조직이 믿고 쓰는 도구가 되려면 이게 먼저다.
코딩 실력보다 우리 조직이 매일 어디서 멈추는지 보는 눈이 제일 중요하다고 했다. 코드는 이제 AI가 짠다. 나보다 훨씬 잘 짠다. 근데 "여기가 우리가 매일 멈추는 지점이다"를 알아보는 건 AI가 못 한다. 매일 그 현장에 서 있는 사람만 할 수 있다.
그래서 이건 여러분이 나보다 낫다고 했다. 진심이었다. 나는 화장품 회사 현장은 알아도 복지관 어디에 매일 종이가 쌓이는지는 모른다. 누가 같은 내용을 두 번 세 번 옮겨 적는지도 그 안에 계신 분들이 안다. 도구는 배우면 되는데 그 눈은 밖에서 못 가져온다. 그 눈을 이미 갖고 계신다.
CLI는 꼭 경험하게 해드리고 싶었다

실습을 굳이 CLI로 잡은 건 거의 고집이었다. 더 쉬운 길도 있었다. 채팅 화면에서 프롬프트 잘 쓰는 법 정도로 잡으면 사고 날 일이 없다. 다들 익숙한 화면이라 막힐 데가 없다. 근데 그건 이분들이 이미 아는 거였다.
무엇보다 채팅으로는 '조직에 꽂는 단계'까지 못 간다.
채팅창으로도 AI는 충분히 쓸 수 있다. 근데 채팅은 창 하나 안에서 끝난다. 길게 일하다 보면 AI가 앞에서 한 말을 까먹어서 처음부터 다시 설명해야 한다. 좋은 결과물이 나와도 복사해서 옮겨 붙이는 건 결국 내가 한다. 도구를 만들어 조직이 같이 쓰게 하려면 환경이 달라야 한다. AI한테 직접 일을 시키고, 결과가 파일로 차곡차곡 쌓이고, 만든 걸 실제로 돌려볼 수 있어야 한다. 그게 터미널이고 CLI다. 앞에서 보여드린 것들도 전부 거기서 나왔다. 말로만 듣고 가시는 것과 한 번이라도 손으로 해보고 가시는 건 완전히 다르다고 봤다.


문제는 이 화면이 처음 보면 무섭게 생겼다는 거다. 검은 바탕에 커서만 깜빡이고 클릭할 버튼도 메뉴도 없다. 그래서 준비 시간을 여기에 제일 많이 썼다. 설치 안내문을 미리 보내드렸다. 설치 과정을 단계별로 담은 웹 가이드 페이지도 따로 만들어 배포했고, 현장에서는 QR 코드 하나만 찍으면 그 가이드가 바로 열리게 했다. 설치 명령은 복사해서 붙여넣기만 하면 되는 한 줄로 줄였다. 중간에 겁먹고 멈추는 분이 없게 "빨간 글씨가 떠도 고장 난 게 아닙니다" 같은 안심 문구까지 넣었다. 이 정도면 되겠지 싶었다.

실습에서 막혔다
그렇게 준비했는데도 당일에 막혔다.
가이드대로 파워셸에 붙여넣었는데도 오류가 자주 났다. 안내문도 명령어도 같은데 노트북마다 다른 데서 걸렸다. 보안 설정에 막힌 노트북, 권한을 물으며 멈춘 노트북, 이유를 바로 알 수 없는 빨간 글씨를 쏟아내는 노트북이 있었다. 한쪽을 풀어드리면 다른 쪽이 막혔다. 나는 다음 슬라이드로 넘어가야 하는데 오른쪽에서는 손이 올라오고 왼쪽에는 빨간 오류가 그대로 떠 있었다. 한 분을 봐드리는 사이 또 다른 분이 멈췄다. 속으로 아 이거 오늘 큰일 났다 싶었다.
AI를 이미 잘 쓰시던 분들도 이 검은 화면 앞에서는 다들 조용해지셨다. 채팅창에서는 능숙하던 분들이다. 화면 하나 바뀌었는데 공기가 달라졌다. 준비하면서 제일 걱정한 부분이 그대로 터졌다. 강의장에서 설치를 통제하기가 얼마나 어려운지 머리로는 알았는데, 몸으로 또 한 번 배웠다.
그래도 좋았던 건
근데 그 화면을 자기 손으로 넘으신 분들은 표정이 달랐다.
설치가 끝나고 터미널에서 AI가 첫 대답을 했을 때, 막히던 게 풀려 화면에 뭔가 떴을 때 작게 "어, 됐다" 하셨다. 강의 통틀어 그 짧은 소리가 제일 기억에 남는다. 슬라이드를 아무리 잘 만들고 아무리 잘 떠들어도 그 표정은 내가 못 만든다. 직접 막혀보고 직접 넘어본 사람한테서만 나온다.
나도 그랬으니까 안다. 처음 터미널을 열었을 때 그 검은 화면이 무서웠고, 빨간 오류를 보고 창을 그냥 닫고 싶던 날도 있었다. 그걸 한 번 넘고 나서야 다음으로 갔다. 구경만 해서는 거기까지 못 간다. 막히신 분들 옆에 붙어 같이 풀어드리면서 미안했다. 근데 속으로는 알았다. 지금 이 마찰이 오늘 두 시간 중에 제일 값진 부분이라는 걸.
내가 처음부터 끝까지 매끄럽게 다 깔아드렸으면 "어, 됐다"는 아마 안 나왔을 거다. 직접 막혀보고 넘어봐서 나온 소리다. 통제가 어려웠던 만큼 성취감이 컸고, 둘은 맞바꾼 거였다. 어지러웠던 현장까지 포함해서 좋은 경험이었다.
강의를 마치고 다음 강의용 메모에 이렇게 적었다. 설치는 최대한 사전 숙제로 돌릴 것. 막힌 사람을 위한 안전망은 미리 깔아둘 것.
단, 마찰을 0으로 만들지는 말 것.
성취감은 그 마찰에서 나온다. 가르치러 갔다가 이건 내가 다시 배웠다.
끝나고

좋은 시간이었다. 이미 열심히 하시는 분들이라 더 그랬다.
준비하다 알게 된 게 있다. 나는 회사에서 한 일을 한 번도 말로 정리해 본 적이 없었다. 병목을 고르고, 작게 만들고, 이미 쓰는 도구에 넣는다는 세 단계도 원래 머릿속에 있던 틀이 아니다. 남한테 두 시간 안에 설명하려고 강의안을 짜다가 그동안 회사에서 뭘 했는지가 그제야 한 줄로 섰다. 만든 건 회사에서였고, 그게 뭐였는지는 강의를 준비하면서 알았다.
만드는 일과 가르치는 일은 쓰는 근육이 다르다. 내가 한 걸 남이 알아듣게 풀어 봐야 나한테도 또렷해진다. 따지고 보면 이직 면접도 곧 있을 발표심사도 내가 뭘 만들었고 그게 왜 됐는지 남한테 설명하는 일이다. 이번 두 시간은 그 연습이기도 했다.
도구는 다음 주에도 새로 나온다. 누군가 또 갈아탔다고 쓰고, 좋아요는 또 천 개씩 달릴 거다. 나는 아마 그때도 오픈클로를 안 써봤을 거고. 근데 그날 검은 화면을 자기 손으로 넘은 분들은 이제 내 문제를 내 손으로 하나 풀어본 경험이 있다. 새 도구 소식에 마음이 급해지지 않아도 된다. 그 경험은 다음 도구, 그다음 도구가 나와도 남는다.
코딩 못 하는 마케터가 회사에서 매일 멈추던 일 하나를 풀었을 뿐인데, 그 얘기가 어느 조직의 두 시간짜리 강의가 됐다. 강의를 마치고 다시 벌여놓은 일들 사이로 돌아왔다. 이직 준비도 이번 주 발표심사도 그대로 기다리고 있고 달력은 여전히 빽빽하다. 근데 이 두 시간은 꽤 오래 남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