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 인스타그램에서 30초짜리 릴스 하나를 봤다. 매튜 맥커너히가 팟캐스트에서 한 말에 주간실리콘밸리 계정이 한국어 자막을 달아 올린 영상이었다.
질문은 단순했다. 맥커너히는 메모해 둔 걸 꺼내 읽듯 물었다.
"인생에서 큰 모험을 8번 해서 7번 성공하는 게 나을까요, 100번 해서 8번 성공하는 게 나을까요?"
7승 1패냐, 8승 92패냐. 그러고는 곧바로 자기 답을 내놨다.
"제 생각엔 신이 있다면 100번 쪽으로 가라고 할 거예요. 죄라는 말은 원래 과녁을 빗나간다는 뜻이거든요. 빗나갈 만큼 모험을 안 한다면 대체 뭘 하고 있는 거예요? 잃을 게 무서워서 아무것도 안 걸면 얻을 것도 없어요."
영상은 30초 만에 끝났는데 이 말은 한참 머리에 남았다. 앞뒤로 무슨 얘기를 하다 나온 말인지 궁금해서 원래 팟캐스트를 찾아 들었다.
균형 얘기 끝에 나온 말

맥커너히가 그 말을 하기 전 두 사람은 살아가는 데 균형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두고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조금 앞에서 맥커너히는 내일을 얻으려면 오늘 뭔가를 내줘야 한다고 했다. 오늘의 플라스틱 반지를 주고 내일의 금관을 받는 식이다. 평화도 저절로 오지 않는다고 했다. 거기까지 가려면 펑크록 같은 분노와 땀이 든다고. 그 말을 듣던 윌리엄슨이 물었다. 우리가 균형을 너무 추켜세우는 건 아닐까, 큰일을 하려면 오히려 불균형이 필요할지도 모르는데.
맥커너히는 조금은 그렇다고 답했다. 균형을 좇느니 불균형 속에서 리듬을 찾는 게 낫다고. 윌리엄슨은 균형이 지나치게 대접받는 이유를 하나 보탰다. 많은 사람 앞에서 말할 만큼 이름이 난 사람들은 대개 정상을 뚫고 올라가 이미 중력을 벗어난 뒤라 처음과는 처지가 전혀 다르다는 거다. 그리고 이렇게 정리했다.
"결과 말고 올라온 과정을 따라 하라." (Model the rise, not the result)
워런 버핏을 닮고 싶으면 지금의 버핏 말고 막 시작하던 무렵에 뭘 했는지를 보라고. 맥커너히는 그 말이 좋다고 맞장구를 치고 한마디 덧붙였다. 큰일을 해낸 사람들은 대개 어딘가 무법자 같았고 균형도 깨져 있었다고.
그다음에 줄타기 얘기가 나왔다. 줄 위를 걸으면서 한 번도 안 흔들린 사람은 평정을 이룬 것처럼 보인다. 근데 버텨야 할 불균형이 처음부터 없었다면 그 평정이 뭐가 대단하냐는 질문이 이어졌다. 8번과 100번은 바로 여기서 나왔다. 나한테는 한 번도 안 흔들린 기록보다 줄에 몇 번 올라갔는지를 보자는 말로 들렸다.

그 뒤로 대화는 영국 철학자 이사야 벌린의 '내면의 성채'로 넘어갔다. 원하는 걸 못 얻을 때 얻을 수 있는 것만 원하도록 자기를 길들이는 태도다. 이번엔 윌리엄슨이 비유를 들었다.
"전쟁에서 다리를 다쳤다고 쳐요. 고쳐 보고 나으면 다행이죠. 그런데 못 고치면 다리를 잘라 내고 이렇게 선언하는 거예요. 애초에 다리를 원한 게 잘못이었으니 그 마음을 눌러야 한다고."
윌리엄슨은 말을 이어 갔다.
"게임에 안 뛰어들면 질 일도 없어요. 마음을 다 걸지 않고 조금 남겨 두면 실패해도 덜 아프고요. 대신 성공할 가능성이 줄고 성공해도 원하던 걸 제대로 얻었다고 말하기 어려워요."
릴스에 나온 30초는 이 대화의 한가운데였다. 100번 쏘라는 말 앞에는 균형을 너무 믿지 말라는 얘기가 있었다. 그 뒤로는 시도하지 않는 사람이 뭘 잃는지로 얘기가 이어졌다.
죄는 원래 빗나간다는 말이었다

맥커너히는 죄의 원래 뜻이 과녁을 빗나가는 거라고 지나가듯 말했다. 멋 부린 말인 줄 알았는데 찾아보니 진짜였다.
우리가 아는 '죄'는 무거운 말이다. 남에게 해를 끼쳤거나 하지 말아야 할 짓을 했을 때 쓴다. 죄를 지었다고 하면 일단 부끄럽고 숨기고 싶다. 벌도 받아야 할 것 같다.
근데 성경에서 '죄'로 옮긴 말은 원래 그런 뜻이 아니었다. 옛 그리스 사람들이 쓰던 '하마르티아'라는 말이고 뜻은 그냥 "빗나갔다"였다. 활을 쐈는데 화살이 과녁에 안 꽂히고 옆으로 빠진 거다. 누구를 다치게 하지도, 못된 짓을 하지도 않았다. 겨눈 데를 못 맞혔을 뿐이다.
이 말이 성경에 들어가면서 '죄'가 됐다. 사람이 마땅히 맞혀야 할 과녁을 벗어났다는 뜻으로 넓어졌다. 그러다 화살 얘기는 잊히고 무거운 뜻만 남았다.
맥커너히가 다시 꺼낸 건 그 잊힌 뜻이다.
빗나가려면 일단 활부터 들어야 한다. 과녁을 정하고 시위를 당겼다가 손을 놓아야 한다. 이걸 한 번도 안 해 본 사람은 빗나갈 일도 없다.
그러니 그가 말하는 실패는 부끄러워할 잘못이 아니다. 뭔가를 겨누고 진짜로 쐈다는 흔적이다. 100번 쏴서 92번 빗나간 사람은 잘못을 92번 한 게 아니라 활을 100번 든 거다.
앞에서 나온 내면의 성채도 같은 얘기다. 성 안에 들어앉은 사람은 한 번도 빗나가지 않는다. 처음부터 활을 안 들었으니까.
87.5%와 8%

숫자만 보면 이상한 선택이다. 8번 해서 7번 성공하면 성공률이 87.5%고 100번 해서 8번 성공하면 8%다. 시험 점수로 치면 87점과 8점이니 누가 봐도 앞쪽이 낫다.
근데 맥커너히가 세는 건 성공률이 아니라 성공한 개수다. 그렇게 세면 앞쪽은 7개, 뒤쪽은 8개다. 뒤쪽이 하나 더 많다.
우리는 성공률로 자기를 재는 데 익숙하다. 학교에서는 맞힌 비율이 곧 점수였고 회사에 와서도 실수 적은 사람이 믿음을 얻는다. 87점짜리 인생과 8점짜리 인생 중에 고르라면 고민할 것도 없다.
야구로 보면 쉽다. 3할이면 잘 치는 타자다. 근데 3할은 타석에 열 번 나가 세 번 치고 일곱 번은 못 쳤다는 뜻이다. 그래도 그 선수를 실패했다고 하는 사람은 없다. 타석에 많이 설수록 못 친 횟수도 같이 는다는 걸 다들 알아서다. 못 칠까 봐 타석에 안 나가면 안타도 없다.
100번 쪽 인생이 딱 그렇다. 92번 못 쳤다는 건 그만큼 타석에 자주 섰다는 말이다.
물론 실패에도 대가가 따른다. 한 번 실패할 때마다 시간과 돈이 들고 마음고생도 한다. 큰 도전 100번을 글자 그대로 하면 버틸 사람이 많지 않다. 그래서 이 말을 내 생활로 가져오려면 한 번에 얼마나 크게 걸지부터 따져 봐야 한다.
본인은 정말 그렇게 살았을까

다른 사람이 한 말이었으면 듣기 좋은 소리로 넘겼을지도 모른다. 근데 맥커너히는 이 말대로 살아 본 사람이다.
2000년대의 맥커너히는 로맨틱 코미디 배우였다. "10일 안에 남자 친구에게 차이는 법", "웨딩 플래너" 같은 영화에 줄줄이 나왔고 흥행도 출연료도 괜찮았다. 본인도 그때가 즐거웠다고 한다. 하던 대로만 하면 8번 중 7번은 이기는 인생이었다.

그러다 점점 무겁고 진지한 역을 하고 싶어졌다. 할리우드는 그를 그런 배우로 보지 않았다. 진지한 영화를 찍는 감독들은 그를 찾지 않았고 들어오는 대본은 전부 로맨틱 코미디였다.
그래서 2010년쯤 로맨틱 코미디를 그만두기로 했다. 그다음 일은 회고록 "그린라이트"에 나온다. 그가 출연 제안을 거절하자 제작사는 출연료를 올렸다. 800만 달러, 1,000만 달러, 1,250만 달러로 뛰더니 마지막엔 1,450만 달러까지 갔다. 우리 돈으로 200억 원 안팎이다. 그는 네 번 다 거절했다.
거절한다고 원하던 역이 바로 들어오지도 않았다. 팟캐스트에서 그는 약 20개월 동안 일을 쉬었다고 했다. 로맨틱 코미디는 자기가 마다했고 진지한 역은 아직 안 들어왔으니 어느 쪽 일도 없었다. 그는 이 시간을 자기 이미지를 지우는 기간이라고 불렀다. 사람들이 "로맨틱 코미디 하던 그 배우"를 잊을 때까지 기다렸다.
20개월쯤 지나자 할리우드가 그를 다르게 보기 시작했다. 1,450만 달러를 거절했다는 얘기가 돌면서 "저 사람 뭘 하려는 거지?" 하는 궁금증도 붙었다. 그때부터 제작비가 작은 독립영화 제안이 들어왔고 그는 "버니", "킬러 조", "머드"에 연달아 출연했다. 셋 다 크게 흥행한다는 보장이 없는 작품이었다.
그렇게 새 과녁에 계속 쏘다가 "댈러스 바이어스 클럽"으로 아카데미 남우주연상을 받았다. 그 흐름은 "인터스텔라"까지 이어졌다. 사람들은 이 시기를 그의 이름에 르네상스를 붙여 '맥커너상스'라고 불렀다.

8번과 100번 얘기는 그래서 그냥 해 본 소리가 아니다. 이기는 게 확실한 판을 내려놓고 맞힐지 모르는 과녁에 다시 활을 든 사람이 한 말이다.
언더독인 나의 타석

이 말이 남의 얘기로 들리지 않았다.
나는 내세울 게 많은 사람이 아니었다. 학벌도 커리어도 꺼내 놓을 만한 게 별로 없었다. 이력서를 쓸 때마다 빈칸을 뭘로 채울지부터 고민했다. 남들과 같은 출발선에 서 있다고 느껴 본 적도 거의 없다. 스스로를 언더독이라고 불러 온 게 그래서다.
언더독한테는 8번 중 7번 이기는 판이 잘 안 온다. 학교 이름이나 회사 이름이 대신 문을 열어 준 적이 나한테는 없었다. 그러면 남는 방법은 타석에 많이 서는 것뿐이다.
그래서 이것저것 다 해 봤다. 퇴근하면 직장인 내일배움카드로 파이썬을 배웠고 주말에는 1년 반쯤 '마개이너'라는 마케팅 스터디에 나갔다. 공모전이 보이면 일단 냈다. 예비창업패키지와 초기창업패키지에 지원서를 썼고 양주시 창업경진대회에도 나갔다. 틈틈이 글을 썼고 혼자 뭔가를 만들었다. 출발선이 뒤에 있으니 손에 잡히는 건 다 붙잡을 수밖에 없었다. 하나하나가 다 타석이었다. 그리고 대부분은 헛스윙이었다. 아무도 안 읽은 글과 떨어진 지원서가 쌓였고, 만들어 놓고 아무도 안 쓴 것도 여럿 남았다.
오랫동안 나는 그걸 실패로 셌다. 성공률로 재면 나는 늘 낙제점이었다.
근데 지금 돌아보면 내 커리어에서 의미 있었던 순간 가운데 계획대로 찾아온 건 거의 없다. 대부분 이것저것 벌여 놓은 틈에서 뜻밖에 나왔다. 바쁜 와중에 들어온 제안을 받아 보면 나중에 남는 게 많았다. 별생각 없이 시작한 일이 몇 년 뒤 방향을 정하기도 했다. 그런 순간이 어디서 올지 미리 안 적은 한 번도 없다. 주말마다 배우러 다니던 내가 지금은 밖에서 강의를 한다.
그러니 흐지부지 끝난 일들도 헛것만은 아니었다. 될 것 같은 일만 골라 했다면 타석 자체가 훨씬 적었을 거다. 그런 순간도 못 만났겠지.
7승 1패의 잣대로 보면 나는 형편없는 타자였다. 근데 100번 쪽 잣대로, 그러니까 타석에 몇 번 섰는지로 세면 꽤 자주 나간 사람이었다. 기록은 그대로인데 세는 법만 바꾸니 전혀 달라 보였다.
지금도 회사 밖에 벌여 둔 일이 여럿이다. 예전 같으면 또 너무 많이 벌였다고 나를 탓했을 거다.
이제는 그걸 타석에 자주 서는 중이라고 본다. 벌여 둔 것 대부분은 헛스윙으로 끝날 거고 그건 이상할 게 없다. 어떤 게 안타가 될지는 이번에도 쳐 봐야 안다.
지금 몇 번째 타석인가

맥커너히 말이 누구에게나 정답은 아닐 거다. 지켜야 할 게 많은 시기도 있고 한 번 실패하면 크게 다치는 판도 있다. 그럴 땐 8번 중 7번을 지키는 쪽이 맞을 수 있다.
다만 못 친 횟수만 세면서 스스로를 깎아내리고 있다면 타석에 몇 번 섰는지부터 보면 좋겠다.
나는 확실한 판을 기다리느니 앞으로도 타석에 자주 서 보려고 한다.
다른 사람들은 지금 몇 번째 타석일까. 7승 1패와 8승 92패 중 어느 쪽으로 살고 있는지 궁금하다.
매튜 맥커너히의 8승 92패 명언은 어디서 나왔나?
영국 팟캐스트 모던 위즈덤 1000회 "용기 있게 사는 법"에서 나왔다. 2025년 9월 말에 공개된 회차로, 28분쯤 균형 얘기 끝에 맥커너히가 큰 도전을 8번 해서 7번 성공하는 것보다 100번 해서 8번 성공하는 쪽이 낫다고 말한다.
죄의 원래 뜻이 과녁을 빗나가는 거라는 건 무슨 말인가?
성경에서 죄로 옮긴 그리스어 하마르티아는 원래 활을 쐈는데 과녁을 못 맞혔다는 말이었다. 나쁜 짓이라는 뜻은 없었고 나중에 성경에 들어가면서 죄라는 무거운 뜻이 붙었다.
매튜 맥커너히는 왜 로맨틱 코미디를 그만뒀나?
더 진지한 배역을 하고 싶었지만 할리우드는 그를 로맨틱 코미디 배우로만 봤다. 그래서 2010년쯤 출연료가 1,450만 달러까지 오른 제안을 거절했고, 약 20개월을 쉰 뒤 독립영화로 돌아와 댈러스 바이어스 클럽으로 아카데미 남우주연상을 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