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데 왜 아무도 스테인레스 시장을 못 잡았나
1편에서 국내 주방용품 시장 규모와 스테인레스 소재의 가능성을 봤다. 독보적인 강자가 없는 ₩2조 시장이었다.
기회가 보이는 시장이면 누군가 벌써 들어갔을 거다. 그런데도 강자가 없는 이유를 찾으려고 경쟁사를 직접 뜯어봤다.
경쟁사는 고가와 저가로 갈린다
고가 라인은 스사모몰과 쿠자 쿡웨어

두 브랜드 모두 권위와 팬덤으로 판다. 스테인레스 팬은 쓰기 전에 배워야 하는 제품이라 소비자가 알아서 커뮤니티로 모인다. 국내 최대 스테인레스 커뮤니티인 스사모에 들어온 소비자는 운영자의 해박한 지식을 믿게 되고 그 믿음이 구매로 이어진다. 쿠자의 주방도 같은 구조다.
이 구조는 강점이 뚜렷하다. 전환율이 높고 팬덤이 스스로 홍보한다. 근데 한계도 크다. 판매 채널이 아주 폐쇄적이라 팬덤 밖 신규 고객에게는 닿기 어렵다. 브랜드가 클 수 있는 상한선이 커뮤니티 규모에 묶여 있다.
저가 라인은 핀일로

네이버 스토어팜을 잘 운영하고 블로그 포스팅도 꾸준히 쌓는다. 저가 브랜드 중에선 가장 대표적이다. 네이버 쇼핑 탭 노출을 꾸준히 지켜 온 건 잘한 점이다.
근데 브랜드 정체성이 없다. 싼 스테인레스 팬을 검색해서 들어온 소비자에게는 닿지만 브랜드를 기억하게 할 장치가 없다. 다시 사는 사람도 '핀일로'를 찾아서 사는 게 아니라 '스테인레스 팬'을 검색해서 산다.
공통 약점 5가지
- 브랜드 아이덴티티 없음: 스사모와 쿠자를 빼면 브랜드 개성이 없다. 제품은 팔지만 브랜드는 안 만든다.
- 매체 다양성 없음: 네이버 쇼핑과 블로그 말고는 다른 채널을 안 쓴다. 인지부터 구매까지 길이 하나뿐이다.
- MZ세대 콘텐츠 전무: 브랜드를 자연스럽게 퍼뜨릴 콘텐츠가 없다. 정보는 커뮤니티 안에서만 돈다.
- 폐쇄적 유통: 특히 고가 라인은 커뮤니티 안에서만 판다. 새 소비자가 들어올 길이 없다.
- 제품력 개선 없음: 스테인레스 팬의 단점(무게, 예열 난이도)을 제품으로 고치지 않고 권위자의 설명으로 메우려 한다. 사용법을 가르치는 것과 제품 자체가 쓰기 쉬운 건 다른 얘기다.
스테인레스 팬에서 소비자가 감탄하는 순간 3가지, 실망하는 순간 3가지
스사모 커뮤니티를 뒤지다 패턴 하나가 보였다. 같은 제품을 두고 감탄과 실망이 갈리는 지점이 뚜렷했다.
만족하는 순간:- 제품을 막 뜯고 스테인레스 외관에 감탄했을 때
- 예열에 성공해 요리를 능숙하게 완성했을 때
- 묵은 때를 벗겨 내 새 제품처럼 돌아온 모습을 봤을 때
- 개봉하면 연마제부터 닦아 내야 하는데 번거롭고 한 번에 안 끝난다
- 적정 예열 온도(180도)를 확인할 방법이 없어 예열에 자꾸 실패한다
- 묵은 때 빼는 법을 몰라 제품이 변색되면 당황한다
만족하는 이유와 실망하는 이유가 같다.
이 3가지는 제품과 콘텐츠로 풀 수 있다.
기존 브랜드는 "사용법을 배우세요"로 대응한다. 근데 사용법을 배워야 한다는 것부터가 진입 장벽이다. 제품이 그 문제를 먼저 풀어 주면 장벽이 낮아진다.
Grainders의 무기
오래 생산을 해 온 업자들은 "문제는 무게가 아니라 손잡이 그립감에 있다"고 말한다. 스테인레스 팬을 들어 본 사람이 가장 먼저 불편해하는 곳도 손잡이다. 손잡이에는 그립감과 브랜드 정체성을 같이 담을 수 있다.
무기 1: 손잡이 장인과의 협업
20년 업력의 국내 최고 손잡이 장인과 함께 기존에 없던 디자인과 그립감의 손잡이를 개발하고 있다. 이 손잡이는 쥐기 편하면서 브랜드 시그니처 역할도 한다. 소비자가 팬을 집어 드는 순간 Grainders인 걸 알아야 한다.
무기 2: 다용도 인디케이터
예열이 어렵다는 문제를 푸는 장치다. 팬이 적정 예열 온도 구간에 들어가면 브랜드 요소를 담은 신호를 사용자에게 보낸다. 예열을 익히는 과정이 그대로 브랜드 경험이 된다. "이 팬은 내가 원하는 온도에 도달했을 때 알려준다"는 점이 곧 차별점이다.
무기 3: 모바일 자사몰 + MZ세대 콘텐츠
타겟은 모바일 쇼핑 비율이 가장 높은 30대 여성이다. 이들을 위해 UI/UX가 직관적이고 브랜드 세계관을 담은 마이크로 카피가 들어간 자사몰을 구축한다. Grainders의 세계관과 캐릭터를 쓴 콘텐츠로 MZ세대와 접점을 만든다. 네이버 쇼핑과 블로그로는 닿지 않는 소비자를 인스타그램과 자사몰로 데려온다.
무기 4: 동원금속 벤더

유력 벤더인 동원금속은 휘슬러, WMF 수준 이상의 품질을 내는 하이엔드급 스테인레스 전문 생산업체다. 자체 연마 기술과 숙련공이 있어 품질을 믿을 수 있다. 브랜드 스토리가 아무리 좋아도 제품이 받쳐 주지 않으면 재구매는 없다. 제품력이 먼저다.

결과
돌아보니
스테인레스 시장에 강자가 없는 건 소재가 어려워서가 아니다. 브랜드다운 브랜드가 없고 소비자에게 다가가는 법을 모르거나 아예 시도하지 않아서다.
스테인레스를 한번 써 본 소비자는 다른 제품으로 잘 안 돌아간다. 재구매율이 높고 주방용품을 통째로 스테인레스로 바꾸려는 경향도 강하다. 첫 구매 허들이 높을 뿐이고 그걸 넘은 소비자는 충성 고객이 된다.
그래서 높은 첫 허들은 한번 넘고 나면 다른 브랜드로 옮기지 않게 붙잡는 해자가 된다.
그 허들을 낮추는 브랜드가 시장을 가져간다.
Grainders는 그 첫 허들을 낮추는 데 집중한다. 제품이 먼저 문제를 풀고 남는 건 콘텐츠로 알려 준다. 경험은 자사몰에서 마무리한다. 경쟁사들이 안 한 일이 곧 Grainders의 차별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