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일은 마개이너 전과 후로 나뉜다

나는 마케팅 비전공자다. 커리어 내내 사수가 없었다. 업무 실력에 자격지심이 있었고 늘 초조했다.
오프라인 강의, 인터넷 강의, GA 오프라인 스터디, 마케팅 커뮤니티까지 갈 수 있는 곳은 다 찾아다녔다. 근데 제대로 소화된 게 없었다. 들인 시간과 노력에 비해 실력이 늘었다는 느낌이 들지 않았다.
문제는 알고 있었다. 강의를 들으면 이해는 됐다. 막상 실무에 써 보려 하면 막혔다. 그 틈을 좁히지 못했다.
그러다 마개이너 스터디를 알게 됐다.
아는 것과 할 수 있는 건 다르다.
마개이너는 아는 걸 직접 만들어 보게 하는 스터디였다.
마개이너는 어떤 스터디인가

마개이너는 마케터(Marketing), 개발자(Engineer), 디자이너(Designer)를 합친 말이다. 오픈소스마케팅 오경석님이 이끄는 디지털마케팅 스터디다.
커리큘럼이 독특하다. HTML로 시작해 CSS, JavaScript까지 배운다. 웹을 먼저 알고 그 위에서 마케팅을 이해하는 방식이다.
처음엔 마케터가 왜 HTML을 배워야 하나 싶었다. 스터디를 마친 지금은 답이 분명하다. 픽셀 설치 오류를 내가 직접 찾고 랜딩페이지를 바로 고치고 개발팀에 스펙을 정확히 넘길 수 있다. 구조를 아는 마케터와 모르는 마케터는 생각보다 차이가 크다.
초반에는 강의로 진행하고 중반부터는 각자 심화 주제를 골라 발표한다. 내가 겪어 본 스터디 중 커리큘럼이 가장 좋았다.
1년 5개월 동안 한 일
과제가 거의 매주 나온다. 발표 준비와 복습까지 하면 들어가는 시간이 꽤 된다.
제일 힘들었던 과제는 두 개다.
하나는 Bootstrap을 활용한 랜딩페이지 제작이다. CSS도 잘 모르는 상태에서 반응형 레이아웃을 만들어야 했다. Grid와 Flexbox 개념을 익히고 화면에서 배치가 실제로 바뀌는 걸 확인했다. 그때 처음으로 "내가 웹을 이해하고 있다"는 감각이 생겼다.
또 하나는 JavaScript로 구현하는 가위바위보 게임이었다. DOM을 조작하고 이벤트 리스너를 달고 조건에 따라 결과를 출력해야 했다. 처음 보는 영역이라 막막했는데 직접 짜 보면서 제대로 이해하게 됐다. 버튼을 누르면 이 함수가 실행된다는 감각이 생기자 페이스북 픽셀이 어떻게 작동하는지도 다르게 보였다.

13기는 한 명도 빠지지 않고 완주했다.
기술보다 오래 남은 것

배운 기술보다 더 큰 변화는 다른 데 있었다.
"사랑하면 알게 되고, 알게 되면 보이나니. 그때 보이는 것은 전과 같지 않으리라."
마케터라는 직무가 더 좋아졌다. 더 넓게 알고 싶고 더 깊게 파고 싶은 영역이 끝없이 생겼다. 앞선 사람들이 나보다 더 열심히, 더 치열하게 공부하는 걸 옆에서 보며 느낀 게 많다.
공부의 밀도가 달라졌다. 강의를 듣는 것과 과제를 직접 만들어 내는 건 전혀 다르다. 마개이너에서는 배운 게 전부 결과물로 검증됐다. 코드는 돌아가거나 안 돌아갔다. 발표는 납득이 되거나 안 됐다. 애매하게 아는 척이 통하지 않았다.
같이 공부한 사람들도 남았다
스터디원은 컨설팅, 커머스, 제조업, PD까지 업종도 업력도 제각각이다. 코로나 때라 수업은 비대면이었다. 그래도 같이 과제를 풀고 발표를 들으며 쌓인 친밀감은 2년 같이 일한 동료보다 깊었다.
같은 고민을 하는 사람들이 각자 업종에서 그걸 어떻게 푸는지 보는 것 자체가 공부였다. 커머스 마케터는 픽셀을 어떻게 다루는지, PD는 GA를 어떻게 읽는지 봤다. 내 시야가 좁았다는 걸 그때 알았다.
숫자로 보면
돌아보니
기술은 배우면 된다.
근데 태도는 환경이 있어야 바뀐다.
나한테는 마개이너가 그 환경이었다.
13기 커리큘럼은 끝났다. 아직 같이 나누지 못한 주제가 많고 같이 공부하고 싶은 것도 많다. 그래서 끝났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좋은 인연을 이어 주신 경석님께 다시 한번 감사드린다.